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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한 여자에게는 이름이 없다.

낚시천국 2009. 11. 29. 07:50


▲ 서로 팔장을 끼고 출근하시는 부모님. 나는 두 분의 호칭문화를 바꾸기 위해 열심히 노력 중이다.

부모님이 서로 이름을 다정히 부르시는 그날까지 난 멈추지 않는다.   


 

"종원아!"

"부르셨어요?"

"아니, 너 말고 엄마."

 

아버지께서는 항상 어머니를 내 이름으로 부르신다. 부르는 아버지는 편하실지 모르지만,

본 이름의 주인인 나로서는 그리 썩 좋진 않다. 나를 부르시는 건지, 어머니를 부르시는 건지 눈치로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중복된 의미의 호칭은 사람의 신경을 곤두서게 한다.

 

공부나 그밖에 할 일들에 몰입하다 보면, 그런 이유로 가끔 짜증이 날 때도 있다.

그래서 가끔 아버지께 어머니의 호칭에 대해서 말씀을 드려보지만, 그것도 잠깐이다.

아버지께서는 나의 이름으로 어머니를 부르시는 게 이미 습관이 되셨다.

 

명절이 되면 이러한 짜증은 절정에 이른다. 집안의 어른들께서 다 모이시기 때문에, 정중히 예의를 갖춰야 하는 날이다.

이 날은 아버지께서 부르시기만 하면 바로 아버지 앞으로 달려가야 한다. 문제는 "종원아!"라는 호칭이 어머니를 지칭하는 건지

나를 지칭하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는 데 있다.

 

우리 아버지뿐만 아니라 우리 집안의 모든 남자들은 자신의 아내를 부를 때 절대로 아내의 이름이나 '여보', '자기'라는 호칭으로

부르지 않는다. 친구들에게도 넌지시 물어보니, 이건 우리 집안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자기 집안도 다들 그렇게 부른다는 것이다.

 

"사람 사는 곳이 다 그렇지 뭐."

 

생각해 보면, 어머니는 자신의 이름으로 불리시는 경우가 거의 없다. 아예 없다고 하는 게 더 옳은 표현일 지도 모르겠다.

밖에 나가면 '종원이 엄마' 또는 '집사람'으로, 집에 있으면 '종원아!'로 통한다. 아버지와 가게 나가서 일하시면

'사모님'이나 심지어는 업소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신다.

 

"엄마는, 자신의 이름으로 불려지지 않는 게 짜증 나지도 않아요?"

"이름이 예뻐야 그것도 기분이 좋지, 촌스러운 이름 계속 불리기 낯 간지럽잖아."

 

'아무리 촌스러워도 자신의 이름은 자신의 자존심이 아닐까요?'라는 물음에는 "거기까지는 생각 안 해봤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대단한 건 아니지만, 어머니가 어머니의 이름으로 불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어머니 스스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시는 모습에

서글픔이 밀려왔다.

 

결혼한 여자에게 이름은 없다

 

서구의 여성들은 결혼하는 순간 자신의 성을 잃지만, 한국의 여성들은 결혼하는 순간 자신의 이름을 통째로 잃어버린다.

물론 주민등록상의 기재된 이름이 사라지지는 않지만, 사회적인 위치에서 자신의 이름은 사라진다. 특히 전업주부의 경우가 그렇다.

결혼한 여성들은 '새댁'이라는 칭호를 달기 시작해 아이를 낳으면 '00엄마'로 불리기 시작한다. 아파트의 동이나 호수(戶數)가

자신의 이름이 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제일 이해가 안 가는 대목은 '돼지엄마'로 불리는 아주머니들이었다. 사람이 돼지를 낳았을 리는 없고,

몸매도 그리 '돼지'는 아니었는데 돼지엄마로 불리는 분들이 꽤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계에서 곗돈관리를 담당하거나 유능한 과외강사들을 알선해주는 아주머니들을 '돼지엄마'라 부르는 것이었다.

 

자영업을 하는 여성들은 간판이 자신의 이름이 된다. 화장품 장사를 하면, 화장품 메이커가 자신의 이름이 되고,

음식점을 하면 그곳의 대표 메뉴가 자신의 이름이 된다. 많은 여성들이 이를 자존심의 문제라 여기지 않고,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당장에 우리 어머니도 피자집 사모님, 돈까스집 사모님으로 불리는 데 대해서나, 아버지가 내 이름으로 자신을 부르는 것에 대해

눈살 한 번 찌푸리신 적이 없다.

 

한국은 테크노니미 화법의 천국

 

한국의 아파트 문제를 책으로 저술한 <아파트공화국>의 저자 발레리 줄레조는 한국의 강남지역 아파트를 현장조사 하면서

한국의 여성들이 '00엄마, □□댁'으로 사람들을 불리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 책의 저자 자신도 공덕동 숙소에 머무는 동안

동네 아주머니들에게 '불란서 학생'으로 불렸다. 그리고 자신과 같은 방에 사는 친구는 '불란서 학생 친구'로 불렸다.

한국식 간접 호칭은 외국인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발레리 줄레조는 한국의 이러한 간접호칭 문화를 테크노니미(teknonymique) 용법에 의한 문화로 분석했다.

테크노니미 용법은 00어머니, 혹은 00아버지처럼 장남이나 장녀의 이름, 또는 사회적 지위나 직업으로 부모를 칭하는 호칭문화를 말한다.

인류학자 에번스 프리처드(E. Evans-Pritchard)가 수단의 뉴어인들의 호칭체계를 분석할 때 사용된 이 개념은,

현재 인류학에서 특정 사회의 관계문화 분석에 흔히 사용된다. 발레리 줄레조는 한국의 아파트나 그 외의 전통적인 소도시 구역에서

한국식 테크노니미 용법의 공간이 형성된다고 본 것이다. 

 

이러한 테크노니미 용법은 이웃 간의 왕래가 현저히 적어진 현대 사회에서도 일상적으로 통용되고 있다. 왜일까?

우선 살인적인 한국의 인구밀집 현상을 그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통계청 발표에 의하면 한국의 인구밀도는 2005년 11월을 기준으로

1㎢당 474명으로 세계 3위를 기록했다. 이 중 국토의 80%가 산지라는 점과 인구의 절반이 수도권에 거주한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실질 인구밀도는 단연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러한 살인적인 인구밀집 사회 속에서 개개인은 결국 타인들과 부대끼며 주위의 이들을 인식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어쩌면 많은 이들을 기억하기 위해 테크노니미 용법이라는 연상기억 방법을 사용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남편이 아내의 이름을 부르면, 그 집에는 꽃이 핀다

 

아무튼, 이러한 의미에서 본다면 개개인의 주변 관계로 특정 개인을 지칭하는 테크노니미 용법은 앞으로도 한국 사회의 중요한

관계 문화로 남게 될 것이다. 특히 아파트와 그 외 주거공간, 소도시 구역 등 여성의 역할이 지극히 주거생활에 한정되는

가족문화와 현상들이 지속된다면, 결혼한 여성이 자신의 이름을 되찾는 것은 지극히 요원할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세상이 어떻게 흘러가든 서로간의 사랑 속에서 가정을 꾸린 부부끼리는 적어도 이 문화의 틀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지 않을까?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일 필요도 없다. 꽃을 꽃이라고 불러주는 순간 그 꽃이 진정 꽃으로 거듭날 수 있듯이,

남편이 아내의 이름을 직접 다정하게 불러줄 수 있다면, 그녀는 가정의 꽃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을까?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김춘수의 꽃 중에서